[편집국 칼럼] 복수는 다시 복수를 부른다!
[편집국 칼럼] 복수는 다시 복수를 부른다!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10.23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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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계가 피의 광야에 내던져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피의 복수전이 두 나라뿐 아니라 인접국가, 그를 에워싼 주변국가로 번지더니 이제 유엔으로 불꽃이 튀어 전 세계가 3차 대전의 위기까지 왔다.

백여 년 전, 영국 등 강대국들이 “2천 년간의 유대인 방랑에 종지부를 찍어 주겠다”며 자국 편의대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민족의 땅에 금을 그어 간헐적으로 불꽃을 튀게 만들더니 이제는 누구도 끌 수 없는 초대형 허리케인 산불로 번지고 있다.

전세기 수십 년 전부터 잊을만하면 발생하던 항공기납치, 인질극, 9.11테러와 오사마빈 라덴 사살 등 사건들을 뒤로 한 채, 두 민족이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벼랑에 섰다.

아, 그런데 어쩌랴. 복수의 역사는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다. 아무리 사소한 시작이더라도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예고할 뿐이다.

지중해 문화권의 악명 높은 복수전통은 영화 ‘대부’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와 마이클 콜레오네는 모두 복수극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다 간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족이 받은 모욕이나 해악은 대를 이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죽인다. 아버지의 원수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다보니 그 원수의 아들도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또 칼을 간다. 보복할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한시도 복수심을 잊지 않은 채 한 세대를 건너 뛰어 복수가 이뤄질 때도 있다.

중국에서 복수의 역사는 의기 있는 행동으로 비춰져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영화와 소설의 주제로 각광 받는다. 중국은 경우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일가친척의 복수를 명분으로 한 경우에는 설사 살인을 저질렀다 해도 형벌을 크게 낮춰줬다.

중국엔 ‘불구대천원수(不俱戴天怨讐)’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라는 뜻이다. 그 원수는 부모, 군주, 스승의 원수를 말한다. 이러한 원수가 살아있다면 복수를 할 때까지는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고대 중국의 윤리였다. 원수는 찾아 죽을 때까지 찾아 갚아야 했다. 복수를 하지 않으면 불효자, 패륜아, 의리 없는 자식 등등의 욕을 먹으며 제대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이밖에도 천인공노(天人共怒), 비분강개(悲憤慷慨), 견원지간(犬猿之間), 각골통한(刻骨痛恨) 등 많은 사자성어가 복수를 전제하고 있다.

오경의 하나인 ‘예기’의 한 대목을 살펴보자.

“父之讐, 弗與共戴天. 兄弟之讐, 不反兵. 交遊之讐, 不同國” 《예기(禮記) 〈곡례(曲禮)〉》

“부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형제의 원수는 병기를 거둬들이지 않고 항상 휴

대해야 하고, 친구의 원수와 같은 나라에서 살 수 없다.”

형제를 죽인 원수를 위해 항상 칼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 칼을 가지러 집에 가는 것조차 허용이 안 되며, 즉시 원수를 갚아야 한다. 친구의 원수가 나라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 만사 제치고 갚아야 한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면 찾아가서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한국은 복수극에 대해 어떠할까?

조선시대에는 복수의 계기가 된 어떤 사건에 대해 나라의 처벌이 이뤄졌다면, 처벌의 강도와는 상관없이 복수를 해서는 안 되며, 이를 어겼을 때는 처벌받았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가문의 원수’ 같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직접적인 복수보다는 ‘저 집안과는 혼인해선 안 된다’거나, 외면하는 관습이 남는 정도였다.

한국과 중국이 이렇게 복수에 대해 온도차가 큰 것은 행정력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반도는 좁은 국토 덕으로 전 지방에 행정력이 투사될 수 있었으나 중국은 워낙 넓어 관아에 공백이 생길 수 있어 사적 제재를 긍정해왔다.

고려시대 때 복수가 합법화 되는 복수법이 있었는데 시행 이후 한반도 전역에서 복수를 빙자한 살인극이 수시로 발생하고 왕의 삼촌까지도 살해당하자 심각성을 깨닫고 곧바로 폐지했다.

문제는 복수극이 지금도 보이지 않는 커튼 뒤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와 이익 관계에서, 연인과 다툼에서, 상대 기업과 경쟁관계에서 복수의 싹이 트기 시작해 극한 상황으로 간다. 때로는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다 막대한 손실을 입고 패가망신하는 경우도 본다.

복수는 부수적으로 상실한 자존심, 자부심, 명예 등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잃은 것을 되돌릴 수 없다. 자기 부모님을 죽인 살인마를 죽여 봤자 죽은 부모님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복수는 결론으로 바로 가는 과정이지 도달해야할 결말은 아니다.

복수의 메커니즘을 끊는 방식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인지하고 진실로 용서를 구하는 길이다. 용인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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