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역사를 다른 방향에서 가정하면…
[편집국 칼럼] 역사를 다른 방향에서 가정하면…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10.30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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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사색의 시간도 길어진다.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덧대어 하나 더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문처럼 들리는 이 질문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우리는 과거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와 전혀 다른 초스피드 시대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역사 행보에 담대한 선을 긋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지구 먹이사슬의 최강자로 등장한 10만 년 동안보다 불과 50년 전의 역사가 훨씬 파란만장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러니 다가올 한치 앞을 내다보기가 어찌 어렵지 않겠는가.

우리는 평범한 시각으로 바라봤던 모든 과거사가 통째로 용광로에 용해되고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대변혁 시대를 맞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했지만 하나를 가정해보자.

수년 전, 도올 김용옥이 광주 문화방송에서 초청하여 ‘전라도 천년의 역사’ 특강을 펼쳤을 때 목청 높여 강조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흘러온 조선 역사를 통해 조선을 바라보고, 그 연속선상에서 오늘을 평가한다.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조선은 어떠했을 것인가”

역사를 뒤집어 가정해 보는 시간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도올의 천재적 역사 인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선의 시작을 예로 들었다. 조선은 이성계가 조정의 명에 따라 요동 정벌을 나섰다가 국경을 넘지 않고, 압록강 위화도에서 돌연 회군하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곤 왕(王) 자를 품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고려 우왕과 최영 장군을 없애고 고려를 무너트린다.

건국된 조선은 유교를 이념으로 삼으면서 과거 고려 왕조가 이어오던 강력한 힘의 제국을 포기하고 문을 숭상한 나약한 나라로 만들었다. 국경에 있어서 조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한정하여 동아시아 중원과 만주를 넘나들던 고조선, 발해, 고구려를 영토와 역사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수도 개경을 황도라 칭하며 ‘황제의 나라’를 자칭했던 고려 역사도 한반도 안으로 밀어 넣었다.

통탄스러워 하는 도올은 이 대목에서 역사를 가정했다.

만약 군사력이 충분했던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감행하여 무너져가는 원 나라를 손에 넣고 동북아시아를 한바탕 휘저으며 우리 영토를 넓혔다면 어찌됐을까? 대한민국의 지도가 두만강과 압록강이 아니라 저 위쪽 둥근 만주벌판으로부터 시작됐다고 가정할 수 있다.

도올은 “그런데 왜 요동반도로 진군하지 않고 그 위화도에서 유턴하여 우리 민족을 쩨쩨하게 만들었느냐”고 통탄했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는 등 4불가론이 무슨 논리냐”고 한탄했다.

굳이 먼 역사를 가정할 게 아니라 장성의 오늘을 빗대어 보자.

지금 우리의 선택과 가는 길이 최상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길이었다면 더 빛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장성 미래 설계에 있어 광주 위성도시라는 강점을 살리고, 축령산 편백숲과 장성호, 황룡강을 발판 삼아 대도약으로 가는 길에 역사의 가정법도 필요하다.

장성의 성장 발걸음이 이웃 시군에 비해 뭔가 성큼성큼 걷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장성이란 지도를 그리는데 한쪽으로만 고집할게 아니라 컴퍼스를 360도 회전하거나 저 쪽 끝에서부터 다가가는 역발상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할 때다. 많은 난관들이 가끔은 반대 방향에서 검토하면 풀리는 수가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난관에 부딪히면 “그 일은 문재인 정권 때 시작된 것이요”라고 외치던 것이 떠오른다.

남 탓만 하고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안되면 되게하라. 꼬인 현안, 뒤틀린 역사를 제대로 풀어가는 것은 순전히 동시대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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