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어디 갔나?" 모른다 했더니 ‘발포’
"가족 어디 갔나?" 모른다 했더니 ‘발포’
  • 최현웅 기자
  • 승인 2024.01.02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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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위, 19일 장성지역 민간인 희생 26명 진실규명 결정
접수조차 되지 않은 수많은 죽음의 진실은 언제쯤 밝혀지나?
6.25 당시 남면 삼태리에서 할머니가 경찰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는 임광택 씨
6.25 당시 남면 삼태리에서 할머니가 경찰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는 임광택 씨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겨울, 경찰 두 명이 마을주민들을 언덕위에 모이게 하더니 가족들의 행방을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할머니 차례가 오고 할머니께서 가족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자 다짜고짜 경찰 중 한명이 소총을 겨누더니 발사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참변이라 그런지 옆에 있던 동료 경찰까지 제지하고 나섰지만 할머니는 결국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 때 할머니 연세가 50대 초반이었습니다”

73년전 남면 삼태리 서태마을에서 일어났던 학살의 기억은 임광택(진원면 서태마을) 씨가 1993년 광주에서 마을 어르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가족들에게선 그저 6.25때 돌아가셨다고만 들었는데 이렇게 끔찍하게, 그것도 경찰의 총에 의해 돌아가셨다는 건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임광택 씨가 광주에서 만났던 마을 어르신은 당시 현장에서 임광택 씨의 할머니께서 젊은 순경이 쏜 총에 의해 돌아가시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고 증언해 줬다. 그 어르신은 당시 총을 쐈던 경찰은 ‘백 순경’이라고 불렸으며 함께 온 동료경찰은 사람이 죽자 당황한 듯 주민들을 해신 시킨 후 서둘러 자리를 떴다고 했다.

할머니는 당시 장성한 아들들이 각자 돈 벌러 나가거나 남편이 집을 비워 행방을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했으나 이를 기분 나쁘게 여긴 백 순경이 총을 쏘았다고 마을 주민들은 기억했다. 할머니가 총에 맞자 주민들은 서둘러 할머니를 들쳐 업고 집으로 향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고 한다.

임광택 씨는 이 기막히고 원통한 사정을 듣고 난 뒤 뒷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할머니의 원한을 풀고 진실규명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고 할머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찾아보다 1970년대에 제작된 가족 족보에서 할머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호적에서는 할머니의 생몰년도가 불분명하게 기록됐지만 족보에서는 할머니가 1950년 12월 11일 사망했다고 나온 기록도 찾을 수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할머니께서 사망한 때가 그 즈음이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 맺히고 원통한 이 사연을 하소연할 데도 없어 가슴에만 묻어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1일 임광택 씨의 동생이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가 장성군경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을 결정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형에게 알려줬고 광택 씨는 부랴부랴 진화위와 장성군 등을 찾아다니며 할머니 사건도 함께 조사해 달라고 진정했다.

하지만 진화위 측은 과거사 진실규명 신청접수가 지난해 12월로 마감돼 더 이상 접수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놨고 다행히 장성군은 “그러면 사건은 다르지만 여·순 10·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유적 신고 접수에 나서면 어떻겠느냐?” 제의해서 뒤늦게나마 여·순 10·9사건 희생자 유족 접수는 마쳤다.

진화위는 19일 한국전쟁을 전후해 장성지역 주민 26명이 국군과 경찰에게 집단 희생된 사건에 대해 제69차 위원회를 열고 ‘전남 장성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진화위 진실규명 장성지역 1) 등 6건의 집단희생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1950년 10월부터 1951년 1월까지 장성군 장성읍, 진원면 등 5개 읍·면에 거주하던 주민 26명이 국군과 경찰에게 희생된 사건으로 진화위의 조사결과 희생자들은 부역 혐의자 또는 빨치산 협조자라는 이유 등으로 국군 제11사단 20연대 군인 및 장성 경찰서와 지서 소속 경찰 등에게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희생자 대수는 20~30대 남성으로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는 비무장 민간인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진화위가 조사한 장성지역 민간인 희생자는 총 26명으로 조사됐지만 임광택 씨의 할머니가 당시 경찰에 의해 희생된 것이 밝혀지면 또 다른 사건에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장성군에 따르면 임광택 씨 말고도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신고를 접수해 온 피해자가 1명 더 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이 피해자 역시 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사건 역시 민간인 희생 사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임광택 씨는 취재진과의 인터뷰 내내 “정부와 진화위는 지난해 말까지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 신고를 신청 받는다 했지만 유가족들은 이제 나이도 많이 들었고 이런 홍보를 접할 기회가 없어 이런 조사 자체가 있는 줄도 몰랐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이 장성에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분들이 더 연세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나서서 진상규명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진화위의 한 관계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장성지역에 접수된 총 228건 중 1차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26명을 제외한 203건에 대해서도 앞으로 지속적인 조사를 벌여 진실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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