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 출생 독립운동가 백강 이병우 낙관 100년 만에 유족에게
삼계 출생 독립운동가 백강 이병우 낙관 100년 만에 유족에게
  • 백형모 기자
  • 승인 2023.08.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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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앞둔 14일 서삼면 묘현사 묘각스님이 후손에 전달

아호 ‘백강(白岡)’ 뚜렷…만주와 서울서 독립자금 조달 책임
14일 서삼면 묘현사 묘각 주지스님이 백강의 손자 이일수 씨에게 유품을 전달하고 있다.
14일 서삼면 묘현사 묘각 주지스님이 백강의 손자 이일수 씨에게 유품을 전달하고 있다.

장성 삼계면 출신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백강 이병우(1888~1941) 선생의 귀중한 유품인 낙관과 직인이 직계 후손에게 전달돼 감동을 주고 있다.

광복절 하루 전인 지난 8월 14일 오전 장성군 서삼면 추암리 묘현사에서 주지 묘각스님이 서울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백강의 손자 이일수(72)씨와 그 친족에게 낙관을 전달했다.

낙관은 모두 3개 한 묶음인데 옥에 새긴 것으로 고급 케이스에 담겨져 있으며 10cm 내외의 도장과 낙관으로 이뤄져 있다. 낙관은 ‘심정수화(心正水和)’ ‘이씨병우(李氏炳宇)’ ‘백강(白岡)’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독립운동사 사료에 나타난 백강 이병우(白岡 李炳宇. 1888-1941) 선생의 발자취는 짧게 기록돼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백범 김구, 백야 김좌진, 백강 이병우를 3백(三白)으로 부를 정도로 핵심 인물이었다.

후손들에 따르면 백강은 삼계면 상도리 죽탄마을 태생으로 어렸을 때 서울로 올라가 중앙고보(현재의 중앙고)에 입학했다. 31세 때인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 공약 작성 시 중앙고 동창인 일석 이희승 선생, 정인보 선생 등의 의견을 모아 만해 한용운 선생에게 전달했고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하여 외무부총장으로 국내와 연락업무를 맡았다.

1930년 경, 국내로 들어와 종로구 가회동에서 공인당한약방을 열어 중국 만주 등에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하고 몽양 여운형, 우사 김규식 등의 동정과 정보를 교환하는 비밀 아지트 역할을 했다. 이 같은 내용이 KBS야인시대에 소개되기도 했다. 공인당은 그뒤 1940년대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수용돼 일부가 재동초등학교가 됐다.

알 수 없는 사연으로 유품을 선친 때부터 보관해 왔다는 묘각 스님은 “독립운동사의 생생한 증거품인 귀중한 유물을 후손이 직접 보관하는 게 당연할 것 같아 오랫동안 광산이씨 족보 등을 뒤져 후손을 찾아왔다”고 말하고 “이제라도 손자에게 전달하게 돼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날 묘현사에는 손자 이일수씨와 부인 김향숙(70) 여사, 광주 거주 친족인 이남진(78) 전 조선이공대 교수가 참석했다.

유품을 전달받은 이일수 씨는 “할아버지의 유품이 하나도 없어 안타까웠는데 이제 제대로 한이 풀릴 것 같다”고 말하고 “귀중한 것인 만큼 의미 있는 사료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씨는 보훈청에 독립운동 유적지였던 서울 공인당 한약방의 복원운동을 건의하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백강의 낙관 유품
백강의 낙관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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