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칼럼] "거두어 정리하고 일생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편집국 칼럼] "거두어 정리하고 일생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 장성투데이
  • 승인 2022.01.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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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자찬묘지명'에서 되새겨 보는 다산의 가르침

“진정으로 올해부터

빈틈없이 촘촘하게 내 몸을 닦고 실천하며,

저 하늘의 밝은 명령, 나의 본분이 무엇인지 돌아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나아가고자 한다.”

-다산 정약용-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이 없고, 곱게 보면 꽃아닌 사람이 없으되, 그대를 꽃으로 볼 일이로다. 털려고 들면 먼지 없는 이 없고, 덮으려고 들면 못 덮을 허물 없으되 누구의 눈에 들기는 힘들어도 그 눈 밖에 나기는 한순간이더라”

세상 이치를 곱씹게 만들고 배려와 포용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송곳같은 찌름이 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명구인데 원전은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의 글에서 나왔다.

새해 벽두에 왜 이런 글을 굳이 되새기는가.

선인들의 훌륭한 새김을 가슴에 담아두고 닮아보려 함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은 19년의 긴긴 유배에서 돌아온지 4년 뒤 회갑을 맞아 지나온 파란한 삶을 회고하며 한 권의 책을 남긴다. 바로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이다. 이름 그대로 스스로 쓴 자신의 묘지명이란 뜻이다.

다산의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인데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사방을 두려워하듯이’ 조심조심 세상을 살아가자는 뜻이라 한다.

다산은 뛰어난 학문과 식견으로 임금과 돈독한 교유를 유지했으나 그를 못마땅해 하던 반대파들의 참소와 시기가 끊어지지 않자 39세에 낙향을 결심했으나 임금이 다시 불러올려 교서를 맡았다.

‘정조 임금의 오른팔’이라 할 정도로 총애를 받던 다산은 정조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자 음지가 양지 되는 개벽을 만난다. 반대파가 득세하면서 다산은 한순간에 역적으로 몰리게 된다. 천주교를 탄압하던 1801년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숙청 바람이 불어 형 정약종은 죽고, 정약전은 신지도로, 정약용은 경북 포항으로 유배된다. 이 무렵 300여 명이 숙청당한다.

그러다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다시 취조를 받고,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으나 다시 강진으로 이배된다. 특별한 혐의가 없었으나 어릴적 벗이자 영의정인 서용보(徐龍輔)의 방해로 석방이 좌절되고 1808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이다.

서용보는 정약용이 암행어사 시절 ‘뇌물을 받아먹었다’는 혐의로 좌천시킨 인물. 그러나 정조의 사면으로 한달도 안되어 다시 등용되더니 경기도 관찰사, 예조판서를 지냈고 정조가 죽자 영의정에 올라 반대파의 수장이 되면서 사사건건 다산을 물고 늘어져 결국 다산을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하게 막는다. 다산이 정사를 돌보면서 사이가 소원해진 친구들도 서용보의 편을 들어 그의 유배를 당연하게 여기고 돌아오지 못하게 막았다.

훗날 다산이 유배지에서 돌아올 때는 자신과 가까웠던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게다가 자신은 조정의 벌을 받고 유배를 간 죄인이였기에 자신을 지켜줄 사람도, 보호해줄 사람도 없었다.

다산이 너무 바르게 인생을 살았다는 징표였을까?

다산은 어쨌든 유배를 당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선물 받아 많은 연구를 하고 책을 쓰게 된다.

“나는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릴 적에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20년 동안 세속의 길에 빠졌다. 그러다 이제야 여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는 드디어 흔연히 스스로 기꺼워했다”-자찬묘지명에서-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조정에서 왕의 최측근으로 있다가 유배를 가고 그것으로 학문에 힘쓸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며 기꺼워 할 수 있는 저 담대한 정신력이 참으로 돋보인다.

그의 자찬묘지명 마지막을 살펴보자.

“나는 1762년 임오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1822년 임오년을 다시 만났다. 나는 한 갑자를 다시 돌아오는 긴 시간을 견뎠다. 나의 삶은 모두 그르침에 대한 뉘우침으로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지난날을 거두고자 한다. 거두어 정리하고 일생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진정으로 올해부터 빈틈없이 촘촘하게 내 몸을 닦고 실천하며, 저 하늘의 밝은 명령, 나의 본분이 무엇인지 돌아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나아가고자 한다.”

365일을 허투루 살다 마지막 날에야 반성하는 우리같은 소인배들을 천만번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명구다.

회갑 이후 14년을 더 살다 간 다산은 또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여유가 생긴 뒤에 남을 도우려고 하면 결코 그런 날은 없을 것이고, 여가가 생긴 뒤에 책을 읽으려고 하면 결코 그 기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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